재미있는 생활용품 오늘은 신기한 생활용품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이름은 다용도 찜기인데... 이건 누가 봐도 계란 삶 기용 찜기다.

 

사진에는 계란을 삶을 수 있게 보여주고 있지만

고구마 삶기, 만두 찌기도 가능하다.

 

열판에 물을 넣고 스팀으로 삶는 방식인데

총 달걀 14개를 넣을 수 있고

한번에 삶아지는 방식이다.

 

(상품 보기)

 

 

우선 열판에 물을 넣어준다.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물의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두 번째가 신기한데

물컵 뒷쪽에 달려있는 작은 송곳으로

계란의 껍질을 살짝 찌른다.

 

그런 다음 전원 스위치를 켜면 끝.

 

 

찜기 안에 수분이 송글 송글 맺히면서

계란이 삶아지는 것이다.

 

그럼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14개를 삶는데 완숙은 15분

반숙은 10분 정도 걸린다. 

 

 

구매한 사람들 평가를 보면

1. 계란을 좋아하는데 물에 넣고 삶을 때 휘저어주어야 하는데
이건 그냥 둬도 되니까 훨씬 편해요.

2. 삶은 달걀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찜기가 귀여워서 자꾸 해 먹어요

3. 아이들 간식해주기 편해요

이런 평가를 한 사람들이 많고

단점은 송곳으로 계란을 찌를 때 너무 깊게 찔러서 내용물이 다 나왔다.

라는 평을 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계란 하나 삶는데 뭐 이런 것까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왕 해 먹는 거 재미있게 해 먹으면 좋지 않을까??

 

 

<상품 보기>

 

 

 

 

 

지난 시간에는 독일이 프랑스를 완전히 점령하고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소련을 공격하기 직전까지의 내용을 다뤘습니다.

 

greatocean.tistory.com/19

 

[6부작] 제2차 세계대전_3부 유태인의 대학살

지난 시간은 히틀러의 계략으로 무너져간 프랑스와 프랑스 비시 정부의 탄생 그리고 끝까지 항전하며 결사의 의지를 다졌던 영국의 상황까지 살펴 보았습니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결연히 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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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유럽의 모든 나라, 도시는 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갑니다.

영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독일의 손아귀에 들어갔죠.

 

이제 독일은 소련을 공격합니다.

독일과 소련은 처음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할 때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장기적인 소련 공격 계획을 세웠고

그 어떤 선전포고 없이 소련을 공격합니다.

 

은밀히 러시아 영토로 진입하는 독일군

1941년 6월 22일 이었습니다.

그들 뒤로는 독일군 153개 사단을 비롯해

핀라드, 로마니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사단도 투입되고 있었습니다.

스페인 파시스트 사단도 투입되고 있었습니다.

 

 

300만 대군과 함께 투입된 60만 대의 트럭 중 많은 수가 프랑스 베를리아와 르노 등에서 만들어집니다.

3,000대 이상의 주포와 7,000문이 넘는 대포, 3000대의 항공기...

24시간 이내에 1,500대의 소련 항공기가 이륙도 하지 못하고 파괴되었습니다. 

 

파괴되는 소련 항공기

 

독일의 기습공격으로 소련 공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독일의 공격은 3천 킬로미터에 걸쳐 세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독일의 소련 공격라인

북쪽 지역의 공격 목표는 레닌그라드입니다. 레닌그라드는 상징적인 목표물입니다.

레닌의 도시이며 러시아 혁명의 요람으로 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입니다.

중앙 진격의 공격 목표는 정치적인 목표라 할 수 있는 모스크바였고

남쪽 지역의 목표는 경제적인 가치가 높은 키예프와 우크라이나였죠.

 

북부의 발트 삼국에서는 때때로 독일은 해방군으로 칭송받았습니다.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겪은 그들에게 그 누구보다도 정치적인 압박을 가했던

무자비한 소련의 비밀경찰보다는 나았다는 것입니다.

 

퇴각하는 소련군은 발트 삼국에 있던 반공주의자들을 처형했습니다. 

반유대주의자들은 유태인들이 공산주의자 등과 공모했다고 주장했죠.

유태인들은 시신을 옮기는 일을 맡았습니다.

 

발트 삼국 전역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조직적인 대학살이 계획되기 시작했고

독일은 그들을 부추기며 절대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시신을 태우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었죠.

 

 

중부전선에서는 전격전의 창시자의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이 일련의 방어시설의 배치한

스탈린 전선에 가로막혀 고전했습니다.

 

 

구데리안 장군은 기갑, 척탄병을 투입해 뚫고 나가야 했습니다.

 

 

구데리안 장군은 계속 전진했습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요소가 그의 정예 차량화 부대의 전진을 방해했습니다.

 

 

이곳을 지나는 독일 병사가 말했습니다.

 

장갑차를 타고 전진하면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이곳은 러시아였다. 도로나 아스팔트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 끔찍하다. 
누런색과 붉은색의 끈적한 먼지가 눈이며 코, 입속 등 모든 곳으로 파고든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독일 병사들은 하루에 50Km씩 이동했습니다.

이들은 곧 러시아가 얼마나 광활한 나라인지 깨달을 참이었습니다.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도 단 하나의 마을을 볼 수 없는 곳이 러시아였습니다.

 

진격할수록 물자와 연료, 탄약을 실은 지원 차량들이 도착하기가 어려워지게 되었죠.

독일군이 극복해야 할 상황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의 방어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타입의 러시아제 타입의 탱크 등장에 독일군은 당황했습니다.

 

T-34는 30톤이 달아는 거대한 탱크로 막강한 대포를 장착하고 있었고

광폭의 궤도로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미비한 통신장치는 약점이었죠.

이 거대한 무기를 대적할 수 있는 독일의 무기는 88mm 대전차포뿐이었습니다.

 

무기와 군대 등 전체적인 군사력은 독일이 더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이 2만이라고 칭한 러시아군은 마지막까지 결사적으로 저항했죠.

 

러시아군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고 독일군의 사상자도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있었지만 3개의 목표지점까지 계속해서 전진해 나갑니다.

 

히틀러는 정치지도자의 인민위원들과

부대에서 장교들을 감독하고 병사들을 감시하던 역할을 하던 공산당원들을

모두 즉각 처결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구데리안은 이런 범죄적 명령에 반대했죠. 그러나 제4 기갑 군의 사령관이

베프너 장군은 말했습니다.

 

이 전쟁은 초유의 무자비함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볼셰비키에서 베풀 자비는 없다.

베프너 장군

 

러시아군은 점차 고갈되어 가는 무기로 필사적으로 싸웠습니다.

4명당 소총이 1자루 인적도 많았습니다. 

 

러시아 군은 전선 전역에서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망은 암울했습니다. 

 

1941년 7월 3일 스탈린은 강한 불우 지아 억양으로

한 번도 발음해 본 적이 없는 말을 합니다. 

그는 러시안인들을 나의 형제자매들이라고 부르면서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히틀러의 독일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적은 무자비 하며 냉혹합니다. 이 나라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이 가장 암울한 시기에 내가 감히 공언합니다.
독일, 파시스트 군대가 정말 무적일까?

나폴레옹의 군대도 무적이라고 여겨졌지만
결국 그들은 패배했습니다.

-이오시프 스탈린-

스탈린 연설을 듣고 있는 러시아인

 

스탈린은 노동자들을 포함한 모든 군수공장들을 우랄산맥 지대로 이동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농부와 소작인들에게도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모두 떠나야 한다. 모든 것을 태우고 떠나라.

이것이 바로 스탈린의 초토화 정책입니다.

 

 

독일 장교들은 나폴레옹의 전례를 잊지 않았습니다.

1812년 러시아는 들판과 도시를 태우는 전략으로 

나폴레옹의 대 육군을 패배시켰고

베르지나 전투에서 프랑스 군을 대량 학살 했습니다. 

 

 

1941년 7월 초 독일군 역시 중부전선에서 베르지나 강에 도착했지만

멈추지 않고 독일군을 계속 전진합니다.

  

저항은 점점 더 거세졌습니다.

강 건너편에서는 달갑지 않은 복병이 독일군을 기다리고 있었죠.

 

러시아군은 새로운 무기인 로켓탄 발사기를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독특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나서 스탈린의 오르간 또는 카투사라고 불리는 신무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독일군을 막지 못합니다.

7월 중순에는 모스크바로 가는 길목인 스몰린스크에 도달합니다.

 

스몰린스크 전투는 3주간 지속됩니다.

독일군은 확성기로 항복을 하라고 전하지만 러시아군은 끝까지 항전합니다.

 

포로의 수는 극히 적었고 일부 생존자들은 깊은 숲속으로 숨어들어 반군이 됐습니다.

많은 소작농과 농부들이 반군에 합류해 전투 훈련을 받았습니다.

 

 

러시아군의 목숨을 건 항전에 독일군의 진격 속도는 늦어졌습니다.

히틀러는 독일군 총사령관인 빌헬름 카이텔 원수와 상의합니다.

 

바르바르샤 작전은 지연되기 시작했고

일부 장군들은 3곳을 동시에 공격하는 전략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구데리안 장군이 말했습니다.

이제 모스크바가 350km 밖에 남았습니다.

진격은 늦춰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전시경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네

그들이 예전처럼 기아 작전으로 우리를 압박하지 못하게 하려면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풍부한 밀이 필요한 시점이네.

 

 

히틀러는 구데리안 장군에게 모스크바는 상징적 목표물이니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군대를 남쪽 키예프 쪽으로 진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원래 남쪽으로 진격하던 독일군과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독일군이 키예프를 포위하면서

이 작전은 사상 최대의 포위 작전이 되었습니다.

 

 

독일군은 무려 60만 명의 러시아군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히믈러가 수용로를 둘러봅니다.

독일군들에겐 포로들에게 먹일 식량 공급 계획 따윈 없었습니다.

히믈러는 그가 열등 인간이라고 부르는 자들에게 냉담한 결정을 합니다.

 

이들을 그냥 굶어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었습니다.

 

폰카게넨 중위는 얘기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생활은 안락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구할 수 있었다.
달걀, 과일, 우유, 버터, 와인

흑해 유역에서 생산되는 뛰어난 적포도주였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기쁘게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여자들은 빵과 우유를 가지고 다가왔다.

우리를 해방군으로 여겼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스탈린을 증오할 충분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30년대 초 스탈린은 대대적인 기아 작전을 전개해

거의 700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일부 반유대주의자들이 포함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독일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학살을 자행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나치 독일에 동조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이런 동맥을 얻은 기회를 망쳐버리고 맙니다.

독일의 이인자라고 불렸던 괴링원수가 우크라이나를 시찰합니다.

 

쓸모 없는 자는 먹이지 마라.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제국을 위해 일하고 나머지는 죽어야 한다.
일하는 자들은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바치게 될 것이다.

-헤르만 괴링-

괴링은 우크라이나를 노예화하는 정책을 실현하고

유태인을 조직적으로 말살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던 것입니다.

 

러시아 공격을 위한 바르바 르샤 작전은 지연되고 있었고

모스크바를 향하던 독일군은 러시아군의 전형적인 기아 작전을 회피하기 위해

자원이 풍부한 키예프, 우크라이나로 진격하여 60만 명의 러시아군을 사로잡았고

이들을 굶겨 죽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칭하면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편에 섰지만

헤르만 괴링은 우크라이나 노예화 작전을 진행하면 유태인들을 말살하려 합니다.

 

동부 유럽의 모든 지역에서 이런 유태인 말살 작전이 수립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시점입니다.

 

앞으로 소련을 어떤 운명에 놓일까요?

 

다음 편은 러시아군의 반격과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에 대해 다뤄봅니다.

 

 

지난 시간은 히틀러의 계략으로 무너져간 프랑스와 프랑스 비시 정부의 탄생

그리고 끝까지 항전하며 결사의 의지를 다졌던 영국의 상황까지 살펴 보았습니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결연히 항전을 다짐했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독일은 영국의 모든 도시를 불바다로 만든다고 선언하였고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은 프랑스의 모든 자원을 확보했으며

프랑스의 모든 항구를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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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작] 제2차 세계대전_2부 프랑스의 참패

[2부 2. 프랑스의 참패 그리고 유린... 패배한 나라의 고통] 1940년 5월 10일 새벽 5시 10분 독일은 드디어 프랑스 침공을 위해서 유럽의 서쪽으로 향합니다. 2년간 전쟁의 징후가 있었고 1차 세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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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처음 폴란드를 공격하고 프랑스를 점령하기까지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독일군이 지나간 모든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그것을 목도한 프랑스의 파리는 무방비 도시를 선언합니다.

즉, 저항하지 않을 테니... 파괴하지 말라는 것이었죠.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은 프랑스 파리로 단체 휴가를 떠났습니다.

휴가를 떠난 군인들 중에는 프랑스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군인도 있었습니다. 

 

프랑스 시민은 독일 군인을 외면합니다.

 

파리를 구경하고 있는 독일 군인들
독일 군인을 외면하는 프랑스 여인

 

프랑스 시민의 일부는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패탱이 이끄는 독재 정부인 비시 프랑스는 독일에 적극적인 협력을 하기로 합니다.

유태인들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는 것과 같은 협력이었죠.

 

독일은 유럽의 많은 도시를 손에 넣었습니다. 

체코의 프라하, 브뤼쉘, 헤이크, 룩셈부르크, 코벤 하겐, 오슬로...

 

런던만이 예외였습니다.

 

 영국의 도시들은 독일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됩니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처칠을 확고하게 지지했고

다행히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지원을 받았습니다.

 

폭격받은 영국의 도시

 

미국은 아직 전쟁을 참여하기 위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지만

루스벨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병기창이 되어야 한다.

루스벨트 대통령

 

그러나 처칠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미국에서 보내오는 군수품들의 일부만 영국에 도착하였습니다.

 

대서양에 퍼져있는 독일의 잠수함이 미국의 선박을 모두 격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 잠수함의 잠망경으로 보는 격침 장면

 

처질은 전쟁의 양상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독일의 유보트를 제거할 수 있는 무기는 없었고

독일의 유보트는 프랑스의 모든 항구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유보트는 1941년 한 해 동안 400만 톤의 선박을 침몰시켰습니다.

 

독일 유보트
포를 발사하는 유보트

 

유보트에 의해 격침당하는 선박

 

독일 잠수함의 선원들이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는 침몰한 선박의 선원들에게

빵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이 선원들은 망망대해에서 며칠 안에 갈증과 추위... 기아로 죽게 될 것입니다.

 

 

히틀러는 잠수함의 활약에 기뻐했지만

미국의 대대적인 재무장 정책이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히틀러는 미국이 1년 안에 참전 준비를 마칠 것이니

그들을 상대하려면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그 자원들이 있는 것은 동쪽이며

그 독일의 생존 공간이 그곳을 정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영국도 희망을 접고 평화를 추구할 것이고 미국은 참전할 시기를 놓칠 테니

빠르게 소련을 공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바르바르사' 작전입니다.

 

히틀러는 소련 공격을 위해서 신속히 군대를 동쪽으로 보냈습니다.

빠르게 군대를 이동시키기 위해서 서와 동을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하고 도로도 만들어야 했죠.

 

1차 세계대전 때도 그랬지만 2차 세계대전 때도 독일 패배의 근본적인 원인은

항상 소련을 공격함으로써 전선을 둘로 나눴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독일의 아우토반

 

동쪽으로 이동하는 독일의 군대는 폴란드를 거쳐야 했습니다.

폴란드에 들어가는 독일의 군인들 중에는 새롭게 참전하는 군인도 있었죠

 

그 군인들 중에 한 사람이 이렇게 썼습니다. 

 

바로 옆에 친위대가 있는데
친위대 사령관이 우리에게 유태인이 무엇인지 아냐고 묻더니...
신호를 하자 한 병사가 작은 남자를 끌고 왔다.

끌고 온 남자에게 오늘은 몇 사람 물건을 훔쳤냐고 물었고
남자가 대답을 하지 않자 사령관은 몽둥이로 10대를 치라고 했다.

우리는 경악했다.
폴란드 점령이 이런 것이었던 가...
우리는 잔악행위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만
진실은 알 수는 없었다.

이 나라는 침묵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이 대학살의 시작이고
거기에 우리의 손과 용기를 보태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독일의 폰카 게네 겐 중위-

 

독일 점령하에 있는 폴란드의 시민

 

히틀러는 동부전선 공격 계획을 연기하였습니다.

이유는 아프리카에서 고전을 하고 있는 이탈리아를 지원하기 위함이었죠.

이탈리아의 수상 '베니토 무쏠리니'는 아돌프에게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히틀러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베니토 무쏠리니
영국에 패배하는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군대는 아프리카 사막에서 고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막의 이탈리아 군인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히틀러는 리비아에 유명한 장군을 파견합니다.

그는 바로 에르빈 롬멜 장군이었죠. 기갑 술의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에르빈 롬멜 독일 장군

 

롬멜 장군은 1940년 5월과 6월 사이에 엄청난 승리를 이끈 전쟁영웅입니다.

골수 나치 당원으로 그는 즉각 아프리카 군에 명령을 내려 영국 진영으로 진격합니다.

 

 

영국군의 그의 등자만으로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의 사진을 대대적으로 전파해 위험인물이라고 경고했죠.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위를 날고 있는 독일 전투기

 

아프리카에 롬멜을 파견해놓고 히틀러는 무솔리니가 침공하려고 했던

그리스를 침공합니다. 발칸반도를 공격함으로써 소련을 침공하기 위한

남쪽 지역을 확보했지만 히틀러는 귀중한 시간을 잃었습니다.

 

작전설명중인 아돌프 히틀러

 

 

모스크바에서 매년 펼쳐지는 군사 퍼레이드가 준비됩니다.

이번 퍼레이드는 평소와는 다릅니다. 스탈린은 뭔가 독일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곧 공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스파이들의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을 위반할 것이라 생각치 못했습니다.

 

 

이 퍼레이드에 독일군도 참여를 했습니다.

세미욘 티모센코 장군이었습니다. 소련군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하고 있지만

서로가 적이라는 사실은 이 순간에도 자명한 것이었죠.

 

 

히틀러는 동부전선에 대한 만반의 준비는 다 되었지만

전선을 둘 이상으로 나누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가졌습니다.

 

히틀러는 영국과 평화조약을 맺고 싶었죠. 

 

영국의 라디오에서 특별한 소식이 전파됩니다.

스코틀랜드 지역에 독일의 전투기가 추락을 했고

전투기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피신을 했다.

 

 

그 전투기 조종사는 '루돌프 헤스'였습니다.

 

 

루돌프 헤스는 영국이 온 이유가 평화를 맺기 위해서 왔다고 했었죠.

원래 루돌프 헤스는 독일의 열성 나치당원이었습니다.

 

 

헤스는 자신이 나치당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영국과의 문제를 푸는데 자기밖에 없다 라고 했었죠.

 

하지만 윈스턴 처칠은 헤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후 그는

평생을 영국 감옥에서 지내게 됩니다.

 

1941년 6월 21일 밤 독일로 가는 소련의 마지막 열차가 지납니다. 

그날 밤부터 22일 대대적인 독일의 공병대의 소련에 대한 공격이 시작됩니다.

별도의 선전포고도 없었습니다.

 

 

독일은 프랑스를 점령하고 프랑스 남부에 친독일 정권인 비시 정부를 세웠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탈리아 군을 지원하기 위해 동부전선 공격 계획을 늦추기도 했죠.

 

발칸반도의 여러 유럽의 나라들도 독일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서유럽의 전역이 독일의 수중으로 들어갔고

독일의 생존권의 확장이라는 이유로 이제 불가침 조약을 맺은

소련을 그 어떤 선전포고도 하지 않은 체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다음 편은 독소전쟁의 양상과 독일의 범죄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등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사진출처: 파이낸셜투데이

 

위 사진처럼 알록달록한 색상의 등산복이 떠오를 것이다.

 

한국에서 아웃도어 제품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일상생활 속에서도 아웃도어 제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엄청난 매출을 기록하였지만

 

현재는 국내 포화상태의 아웃도어 브랜드 및 상품들과

이제 등산을 다니는 나이층의 변화로 인해

패션 트랜드가 바뀌면서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등산이라는 개념이 하이킹과 맞물려서

꼭 등산 전용의 의류를 챙겨 입고 다닌다는 개념보다는

 

가벼운 차림에 레깅스를 입고 편히 다녀오는

마치 일상의 연장 선상으로의 문화로 바뀌고 있다.

 

사진출처: 아이더 공식 블로그

 

서울에서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인왕산(해발 338미터)은

여름, 가을... 심지어 겨울에도 레깅스를 입고

등산하는 등산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인왕산(모델:김주희) 사진출처: 아시아경제

 

물론 레벨이 조금 높은 겨울 산행은 얘기가 좀 달라지지만

난이도가 높은 등산에 있어서도 예전처럼 기능적인 측면만이 부각되진 않는다.

 

겨울산행 시 필수 조건인 방수, 방풍, 투습 등등

다양한 조건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디자인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사진출처: 코오롱스포츠홈페이지

 

12월 한라산 등산 계획을 세우면서

등산복, 등산장비 등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안전한 산행을 위해서 기능적인 측면만을 고려하기에는

너무 만족스럽지가 않아서 기능과 디자인적인 측면을 고루 갖추길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코오롱 스포츠의 윈드체이서

 

사진출처: 코오롱스포츠

 

공효진이 모델로 나오는 코오롱스포츠의 윈드체이서는

고어텍스 제품으로 방수, 방풍, 투습 기능이 있으면서

두껍지 않아 겨울산행에서 중요한 레이어드(겹쳐 입기)가 가능하다.

 

위 사진처럼 자케의 넥 부분이 양쪽으로 벌어지는 스타일인데

지퍼를 사용해 올리면 아래 사진처럼 스타일이 바뀐다.

 

사진출처: 코오롱 스포츠

 

보정되지 않은 실물사진은...

 

 

공효진이 착장한 사지는 같은 제품의 여성용

아래 실물사진은 남성용으로 색상이 다르다.

 

겨울에 안전한 산행을 위한 그리고 약간의 멋스러움을 잃지 않기 위한

선택으로 코오롱스포츠의 고어자켓을 추천한다. 

 

"사우나, 한증막은 안되고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줌바, 태보, 스피닝, 에어로빅, 스텝, 킥복싱 등 격렬한 GX(Group Exercise)는 안되고

 일반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은 된다."

"일반 헬스장에서 런닝머신을 뛰는 것은 되지만 아파트나 공동주택 단지 내의 헬스장 운영은 금지."

"헬스장, 실내체육시설 샤워장 이용 전면 금지... 그러나 수영장은 가능."

 

 

사우나의 일반적인 전경 (사진출처: 굿가이 티스토리)

news.joins.com/article/23933689?cloc=joongang-home-newslistleft

 

헬스장 샤워는 안 되고 수영장은 괜찮다?…'핀셋 방역' 형평성 논란

정부의 핀셋 방역 조치에 따라 헬스장, 실내체육시설 등 샤워장 이용은 전면 금지됐지만 수영장 샤워시설은 예외로 남겼다. 헬스장 운영자들이 모인 회원 수 3만8000명의 인터넷 카페에는 "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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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일반적인 샤워시설 (사진출처:북부신문)

뭔가 이상한 말이다. 뭐는 되고 뭐는 안되는데... 기준이 불명확하고 

핀셋 규제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주먹구구식이다.

 

격렬한 GX 운동은 안된다고 했는데... 그럼 요가는? 격렬한 GX 운동인가?

 

그룹요가사진 (사진출처: 온요가스튜디오닷컴)

수도권은 현재 2단계를 유지중이지만 내일부터(12월 1일(화)) 2단계 + 알파라고 해서 특정 시설에 대한 핀셋 규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현재 증가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응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핀셋 규제로 인해서 어떤 사람은 웃고 어떤 사람은 울고 있다.

사실 정부차원에서 규제를 가한다는 것은 정말 고육지책이다.

안그래도 경제가 어렵고 살길은 막막한 가운데 뭔가 하지 말라는 규제정책은 많은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고 이런 타격은 당연히 집권 세력 정부에 대한 불신과

정부 차원의 부담으로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의 정은경 청장은 앞으로 수일 안에 천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불안한 전망을 하였다. 

 

www.mk.co.kr/news/society/view/2020/11/1230280/

 

[종합] 정은경 "코로나19 확진자 700∼1000명까지도 가능"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지난주 감염 재생산지수는 1.43으로 분석됐다며 감염 재생산지수가 1.43일 경우 1∼2주 뒤 감염자는 많게는 700∼1천명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30일 정례 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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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분명 우리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우리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점은

바이러스 전염과 전파라는 개념 보다는 생명의 위태로움을 야기할 수 있다.라는 점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진되면 우선 격리시설에서 기한 없는 격리를 해야 하고 가족도 볼 수 없고

경제활동을 포함하여 모든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안타깝게 생명을 잃게되면 장례식은커녕... 화장을 해서 시신의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마스크를 올바로 쓰는 것에 집중해야 하고 스스로의 청결에 대하여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본인을 지키고 내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다.

 

 

 

 

남성이기에 여자들의 생리대 문제가 사실상 심각하게 다가온다고 보기 어렵다. 본인에게 해당사항이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주요 관심사에서 배제가 되는 법니다. 그래서 다 직접 겪어봐야 안다고 하나보다.

 

나에게 직접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라면 한 번쯤은 관심을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이타심)

 

오늘은 여성의 생리대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2019년 11월 서울시가 여성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무상으로 생리대를 공급한다?'

 

원래 서울시 조례(19조 6항)에 의하면 위생용품 지원 대상에서 만 11~18세 비곤 가정의 여성에게 생리대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번 이 조례에서 '빈곤'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모든 여성청소년에게 무상 지원한다.라는 내용으로 상임위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대상은 약 32만 5천 명 정도이고 비용은 약 410억 원가량이 소요된다. 이 조례가 통과되면 마땅히 보호되어야 할 '월경권'이 공론화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정치권에서도 관심이 아주 많았었다.  

 

이 뉴스가 나왔을때 안티 페미 단체와 보수 언론에서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정치인들에게 '무상'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민감한 단어인데... 생리대 공급에 '무상'이 붙어 버리니... 좌파정책으로 프레임을 씌어서 비난 일색으로 일관했다. 

 

현재는 2016년 저소득층 십대 여성의 성-건강권을 기본권 차원에서 보장하기 위해 생리대 지원을 시작으로 2018년 10월에 전국 최초로 11개 공공기관 내 화장실에 비상용 생리대를 비치, 2019년에는 200개 공공기관으로 확대되었다. 무상지급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생리대의 남용과 오용 그리고 무상복지의 일환으로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우려했던 모든 여론은 잠재워지고 위 정책은 경기도 여주 등 타 지역으로 모범사례로 평가받으며 전파되고 있다.

 

여성의 생리 문제에 있어서 솔직히 잘 알지 못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고 이것이 단순 생리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인격, 건강 그리고 성평등, 차별의 문제까지 여성의 생리는 여성 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돈이 없어서 신발 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하는 것은 뉴스를 통해서 많이 보았을 것이다. 월경권이라는 여성의 권리는 이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의 필수권인 것이다. (솔직히 한국사회의 수많은 지도층이 남성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에서 월경권이라는 단어를 조금 수정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남성들 입장에서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안타깝지만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971405.html?_fr=mt2

 

스코틀랜드, 세계최초로 여성 생리용품 전면 무상공급

스코틀랜드가 '생리빈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여성 생리용품을 전면 무상공급한다. 가디언, 로이터, AFP통신 등에 따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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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스코트랜드에서는 '생리 빈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여성 생리용품을 전면 무상 공급한다는 것에 다수 동의를 얻어서 시행한다고 한다. 이 법안을 발의한 노동당 '모니카 레넌' 의원은 "누구도 생리대를 구할 걱정이 없어야 한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라고 말하면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경제적 악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경제난 시국에 최약, 빈곤층은 생리대 조차 구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모니카 레넌 하원의원 트위터

이 것은 꼭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25일 0시를 기준으로 382명의 일일 확진자를 기록중이고 이미 수도권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 중이다.

다시금 비접촉의 시간으로 지난여름과 같이 돌아가고 있다.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계층에서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현재의 빈곤층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스코틀랜드에서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의회에서 생리대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뤄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다뤄지거나 조명받은적이 없다. 그만큼 여성의 일로만 치부되는 무감각의 의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이런 기본권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도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언제든 생리대를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한다.  

  

news.joins.com/article/23928908?cloc=joongang-home-newslistleft

 

"청와대도 재택근무 하는데" 2단계 격상 체감 못하는 직장인들

정부가 전날부터 대면 모임ㆍ행사ㆍ회식 등을 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 감염되거나 전파한 공무원을 문책하는 내용의 특별 방역 지침을 실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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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중앙일보

24일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되었다. 연일 300명을 넘어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함에 따라 서울은 '천만 시민 멈춤 기간'이라고 설정하였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전파한 공무원을 문책하겠다고까지 말하며 강도 높은 방역 지침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기업은 어떨까? 나만 해도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서 만원인 지하철을 타야하고 회사에서 일할 때면 주변에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내 주변에서 대화하곤 한다.

 

저 사람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와 접촉을 했는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기에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오전에 가급적 화장실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자리에서 움직이질 않는다. 그나마 최소한의 접촉을 위한 궁여지책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사람들은 이동하고 외근하고 돌아온 직원은 나에게 다가와 마스크를 반쯤 걸친채 이런저런 대화를 건다.

 

점심시간이면 사무실의 직원들과 대표와 함께 회사 인근 식당에 가서 뻔한 메뉴를 골라 즐겁지 않은 식사를 한다. 평소에 김치를 좋아하는 편인데 상 한가운데 같이 먹는 김치는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는다. 지독하게 재미없는 대표의 얘기를 점심식사 내내 들어야 한다. 요즘 같은 시국에 대화를 줄여도 부족한 판인데...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혹자는 왜 편하지 않는 식사를 억지로 하는지 궁금해하겠지만 사실 나 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 어쩔 수 없는 상황... 이게 회사고 조직이고 관례라고 불리는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지침은 사실 일반기업에게까지 다가오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정부는 문책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청와대도 재택근무를 하는 판인데 회사가 작으면 작을 수록 이런 현실은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이끌곤 한다. 회사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곧 회사의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사용자는 언제나 고용된 사람들이 내 눈앞에 앉아 있고 열심히 일해주길 바라니... 눈에 보이지 않는 재택근무는 어불성설이다.

 

10년이 넘게 직장생활을 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작은 회사도 차려서 운영해보니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해가 가더라... 다 각자의 입장이 있으니...

 

어떤 형태든 결정권자들이 있다. 그 결정권자들은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사실 기준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최고의 선택을 위해서 노력한다. 그 선택이 자신을 포함하여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좋은 영향을 준다면 그 결정이야 말로 가장 좋은 선택일 것이다. 결정에는 장단이 있는 것이고 크든 작든 누군가는 꼭 피해를 보거나 혜택을 본다. 책임지지 못하는 결정도 있고 후회하는 결정도 있고...

 

하지만 분명한건 나중에는 대충 그때 그 행동이 이런 것이었구나 라고... 판명은 나는 것 같다. 항상 어떤 논쟁이 있을 때마다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인 것 같다. 

 

긴긴 시간이 흐르면... 이해도 되지만 아닌것도 있을 것이고... 엉터리도 있을 것이다. 

 

부디 좋은 선택을 통해 올바른 길을 걷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런 거지 깽깽이 같은 일들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게 너무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우선 제목만 얘기 해보자.

 

목동역 여자 화장실에 치마 입고 들어간 남성... 숨어있다 잡혔다.

 

사진출처: 노컷뉴스

 

최근 3년간 목동역을 이용해왔다. 목동역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최근에는 일부 출입구에 엘리베이터 공사 중이어서 혼잡하기가 이를대없다.

 

이런 혼잡을 틈타 왜 치마를 두르고 여자화장실에 들락거리는지...

목동역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았는다. 

 

 

www.nocutnews.co.kr/news/5452414

 

목동역 여자 화장실에 치마 입고 숨은 남성…경찰에 붙잡혀

;;;;;

www.nocutnews.co.kr

 

기사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경찰대는 A 씨를 성적 목적을 위한 공공장소 침입 행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4일 밝혔는데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전 목동역에서 빨간색 치마를 입고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다가

어느 시민이 여자화장실에 남자가 있다는 신고를 해서 덜미가 잡혔다는 것이다.

 

이제는 서울 곳곳에 CCTV도 많고 어떤 짓을 하든 결국 덜미가 잡히게 되어있다.

최근 미해결 사건이라고 해서 알려진 다양한 사건들은 거의 2006년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CCTV가 없었던 시절이라 범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죄를 지으면 잡힌다. 한국의 범인 검거율은 거의 99%에 가깝다. 

 

세계적으로 봐도 상당히 높은 검거율이다.

 

 

그러니... 제발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뭐가 불만인지는 모르지만

제발 혼자서 알아서 해결하시길...

 

남들에게 피해 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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