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부 1. 독일군의 신들린 전투와 아돌프 히틀러의 전략]

 

지난 시간에는 독일과 프랑스-영국 연합군이 대치하고 있는 와중에

독일의 히틀러가 어떻게 유럽의 다양한 지역을 폭격하고 유린하면서

연합군에게 충격 요법을 썼는지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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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독일은 연합군과 정면 승부를 펼치려고 합니다.

프랑스-영국 연합군과 독일군의 수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독일 열세였죠. 

 

1940년 5월 9일 프랑스 아르덴 지역의 작은 도시의 학교는

여느 때와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함께 공부를 하며 웃고 있었죠. 

 

1940년 프랑스 아르덴의 학교 모습
1940년 프랑스 아르덴의 학교에서 율동하고 있는 프랑스 소녀

하지만 이것이 이 아이의 마지막 수업이었습니다. 

 

1940년 5월 10일 새벽 5시 35분 독일은 프랑스를 공격했습니다. 

 

독일 공수부대

독일 공수부대가 네덜란드에 낙하합니다. 

이는 300만 침략군의 최선방 전초 부대입니다. 

 

독일은 1914년과 같이 네덜란드를 거쳐 벨기에를 공격하여 프랑스로 향하는 척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히틀러의 미끼였습니다. 

 

독일의 벨기에 공격

프랑스의 가믈렝 장군은 자신만만했습니다.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전투 없는 전쟁 중 가믈랭 장군은 만반의 준비를 다했죠.

독일군의 숫자는 연합군보다 적고 연합군은 이미 오랜 시간 준비하였습니다.

 

프랑스 가믈랭 장군의 기동사단

 

프랑스의 정예부대인 기동 사단들과 영국의 원정군 전체는

벨기에를 향해 진군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들은 담대한 전투부대원이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죠. 

 

하지만 히틀러는 사령부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연합군이 미끼에 걸려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사령부에서 흐믓해 하고 있는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는 '기쁨에 겨워 울 것 같다고 외쳤다고 합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공군 참모총장인 괴링에게 명령합니다.

벨기에 상공을 폭격하지 말고 연합군이 벨기에 깊숙이 진군하도록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연합군 배후를 노리는 독일 침략군의 이동 동선

그 사이 진짜 독일 침략군은 아르덴 숲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아르덴 숲을 진군하는 독일군

 

프랑스 최고 사령부는 어떤 탱크도 숲이 우거진 아르덴을 넘어올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앞길을 막은 것은 오직 교통체증뿐이었죠. 

 

차가 밀려 진군이 느려진 독일군

그 사이 네덜란드와 벨기에 사는 사람들 중에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 제일 먼저 피난길에 오릅니다.

모든 것이 두려움이었고 모든 사람이 간첩으로 의심을 받았습니다.

 

5월 11일 동틀 녘 독일군 공수부대는 벨기에 영토에 낙하합니다. 

목표는 벨기에 방어의 핵심인 알베르 운하의 에방에마르 운하를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운하 점령을 위해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독일군

여긴 절대 침투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곳이었죠.

하지만 독일군은 용감했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독일 병사가 운하를 지키는 벙커에 폭약을 투하하는 장면

요새는 함락되었습니다. 요새가 함락되자 사람들은 앞다투어 파리로 향하는 열차에 타려고 애썼습니다.

벨기에 피난민들은 남쪽으로 향하는 가축 수송 열차에 타서 이동했습니다. 

 

독일군이 벨기에를 점령하자 유럽의 공포가 확산됩니다.

이런 공포에 대응하는 방법은 단 두 가지뿐입니다. 

순순히 복종하거나 달아나거나죠...

 

벨기에 피난민

 

역사적으로 볼 때 농부들은 자신들의 농작물과 가축을 버리고 갈 수 없기 때문에

가장 늦게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위대한 벨기에 시인 에밀 베르하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갖지 못했고 이들 앞에 놓인 것은 끝없이 펼쳐진 도로뿐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끝없는 불운과 불행밖에 없다.

- 에밀 베르하른 -  

 

독일의 공중폭격

독일은 공중 폭격을 드디어 시작했습니다. 

주요 도시들 도로와 다리... 모든 것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북부와 동부 프랑스 도시들이 폭격을 당했습니다. 

프랑스는 이제 현대전의 현실을 대면하게 된 것입니다. 

 

폭격받은 프랑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항구가 불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이미 항복을 선언한 나라였죠.

아돌프 히틀러의 또 다른 전쟁 범죄입니다. 

 

윈스턴 처칠

 

이 시기 영국에선 윈스턴 처칠이 수상이 됩니다.

역사란 참 희한합니다. 항상 경쟁자를 탄생시키니 말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말합니다. 

 

저는 자신 있게 말합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운명은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처럼
대영 제국과 프랑스 공화국의 승리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

 

하지만 연합군의 상황은 계속 악화일로에 들어섭니다. 

아르덴 숲을 지난 독일은 프랑스 방어선을 향해 단 3일 만에 전진하였고

독일 병사는 마치 외계 병사들처럼 프랑스 군을 쓰러트리며 전진합니다.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쏘아대며 단 하루 만에 도시를 함락시켰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진짜 장애물은 프랑스군이 아닌 강이었습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 독일군은 다리를 건설하려 하고 프랑스 군은 그곳을 폭격합니다. 

 

하지만 독일군은 프랑스군을 격퇴하였고 결국 다리를 건설합니다. 

5월 13일 밤입니다. 

 

52세의 프러시아 출신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은 뛰어난 기갑전 전략가로

탱크를 이용한 신속한 공격으로 유명했습니다. 

 

'Blitzkrieg 블리츠 크리크' 전격전은 적이 준비한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되는 작전입니다. 

 

전격전으로 유명한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
운하를 건너고 있는 독일 탱크
독일군 보병

 

독일의 전투기 스투카

 

독일은 5월 13일 운하를 건너고 있습니다. 

탱크가 지나가고 그 뒤에 보병이 뒤따르며 독일의 우수한 전투기 스투카가 그 뒤를 따릅니다. 

 

이제 무엇이 이 독일군을 막을 수 있을까요? 

 

프랑스 총리 폴 레노는 놀라서 영국의 처칠에게 전화를 겁니다.  

 

우리는 졌습니다. 전투에 패했어요

-폴 레노-

 

연합군은 벨기에에 발이 묶여 있어서 독일군의 진격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파리의 당국자들은 날로 들어가는 피난민에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파리의 피난민

 

정보는 귀했고 무성한 소문만 돌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사령부는 방금 독일이 해안을 향하고 있고 방금 연합군이 덫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히틀러의 낫 베기 작전이 성공한 것입니다. 

 

세단을 점령한 독일군이 프랑스 북부 해안으로 향해 연합군을 포위한다. 

 파리에서 반격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드골 대령에겐 탱크를 몰고 가서 전공을 세울 기회가 생겼습니다. 

프랑스 탱크는 독일 탱크보다 우수했고 숫자도 많았죠. 

 

프랑스 드골 장군의 탱크 부대

 

하지만 공군 지원 없이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프랑스의 탱크는 독일의 스투가 의 사냥감이 되었습니다.

 

패배하는 프랑스의 탱크

독일군의 탱크는 프랑스 북부의 마을과 도시들을 빠르게 통과했습니다. 

프랑스 군은 독일의 진군을 늦추기 위해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은 모든 국지적 저항을 물리쳤습니다. 

마침내 독일군이 영국 해협에 다다릅니다.

 

영국 해협을 바라보고 있는 독일군
됭케르크까지 몰린 연합군

1940년 5월 28일 프랑스-영국 연합군은 모두 포위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총리 폴 레노는 가믈랭 장군을 폐위하고 새로운 구세주를 찾습니다. 

그가 찾은 인물은 1918년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72세의 맥심 베이강 장군입니다. 

 

프랑스의 새로운 사령관 맥심 베이강

 

그리고 레노는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또 다른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82세의 필리페 페탱 장군을 부총리로 임명합니다. 

그러나 페탱은 곧 레노에게 등을 돌립니다. 

 

프랑스 부총리 필리페 페탱

 

맥심 베이강 장군도 다른 수가 없어 됭케르크까지 후퇴하는데

아돌프 히틀러는 후퇴하는 것을 그냥 둡니다. 

 

이유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습니다. 

영국에 관대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니면 평화협정을 맺을 일말의 마음이라도 생겼기 때문에? 

 

해변을 가득 채운 40만 병력은 희망을 잃고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바다 넘어 영국뿐이었죠. 

 

됭케르크의 연합군

 

이제 이 40만 연합군의 목숨은 오롯이 독일에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여기까지 몰고 왔을까요? 프랑스도 영국도 1차 세계 대전의 승리와 함께 

끝없는 독일의 도전에 철저하게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준비가 무색하게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시련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역사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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