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은 히틀러의 계략으로 무너져간 프랑스와 프랑스 비시 정부의 탄생

그리고 끝까지 항전하며 결사의 의지를 다졌던 영국의 상황까지 살펴 보았습니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결연히 항전을 다짐했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독일은 영국의 모든 도시를 불바다로 만든다고 선언하였고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은 프랑스의 모든 자원을 확보했으며

프랑스의 모든 항구를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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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작] 제2차 세계대전_2부 프랑스의 참패

[2부 2. 프랑스의 참패 그리고 유린... 패배한 나라의 고통] 1940년 5월 10일 새벽 5시 10분 독일은 드디어 프랑스 침공을 위해서 유럽의 서쪽으로 향합니다. 2년간 전쟁의 징후가 있었고 1차 세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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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처음 폴란드를 공격하고 프랑스를 점령하기까지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독일군이 지나간 모든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그것을 목도한 프랑스의 파리는 무방비 도시를 선언합니다.

즉, 저항하지 않을 테니... 파괴하지 말라는 것이었죠.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은 프랑스 파리로 단체 휴가를 떠났습니다.

휴가를 떠난 군인들 중에는 프랑스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군인도 있었습니다. 

 

프랑스 시민은 독일 군인을 외면합니다.

 

파리를 구경하고 있는 독일 군인들
독일 군인을 외면하는 프랑스 여인

 

프랑스 시민의 일부는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패탱이 이끄는 독재 정부인 비시 프랑스는 독일에 적극적인 협력을 하기로 합니다.

유태인들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는 것과 같은 협력이었죠.

 

독일은 유럽의 많은 도시를 손에 넣었습니다. 

체코의 프라하, 브뤼쉘, 헤이크, 룩셈부르크, 코벤 하겐, 오슬로...

 

런던만이 예외였습니다.

 

 영국의 도시들은 독일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됩니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처칠을 확고하게 지지했고

다행히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지원을 받았습니다.

 

폭격받은 영국의 도시

 

미국은 아직 전쟁을 참여하기 위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지만

루스벨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병기창이 되어야 한다.

루스벨트 대통령

 

그러나 처칠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미국에서 보내오는 군수품들의 일부만 영국에 도착하였습니다.

 

대서양에 퍼져있는 독일의 잠수함이 미국의 선박을 모두 격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 잠수함의 잠망경으로 보는 격침 장면

 

처질은 전쟁의 양상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독일의 유보트를 제거할 수 있는 무기는 없었고

독일의 유보트는 프랑스의 모든 항구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유보트는 1941년 한 해 동안 400만 톤의 선박을 침몰시켰습니다.

 

독일 유보트
포를 발사하는 유보트

 

유보트에 의해 격침당하는 선박

 

독일 잠수함의 선원들이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는 침몰한 선박의 선원들에게

빵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이 선원들은 망망대해에서 며칠 안에 갈증과 추위... 기아로 죽게 될 것입니다.

 

 

히틀러는 잠수함의 활약에 기뻐했지만

미국의 대대적인 재무장 정책이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히틀러는 미국이 1년 안에 참전 준비를 마칠 것이니

그들을 상대하려면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그 자원들이 있는 것은 동쪽이며

그 독일의 생존 공간이 그곳을 정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영국도 희망을 접고 평화를 추구할 것이고 미국은 참전할 시기를 놓칠 테니

빠르게 소련을 공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바르바르사' 작전입니다.

 

히틀러는 소련 공격을 위해서 신속히 군대를 동쪽으로 보냈습니다.

빠르게 군대를 이동시키기 위해서 서와 동을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하고 도로도 만들어야 했죠.

 

1차 세계대전 때도 그랬지만 2차 세계대전 때도 독일 패배의 근본적인 원인은

항상 소련을 공격함으로써 전선을 둘로 나눴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독일의 아우토반

 

동쪽으로 이동하는 독일의 군대는 폴란드를 거쳐야 했습니다.

폴란드에 들어가는 독일의 군인들 중에는 새롭게 참전하는 군인도 있었죠

 

그 군인들 중에 한 사람이 이렇게 썼습니다. 

 

바로 옆에 친위대가 있는데
친위대 사령관이 우리에게 유태인이 무엇인지 아냐고 묻더니...
신호를 하자 한 병사가 작은 남자를 끌고 왔다.

끌고 온 남자에게 오늘은 몇 사람 물건을 훔쳤냐고 물었고
남자가 대답을 하지 않자 사령관은 몽둥이로 10대를 치라고 했다.

우리는 경악했다.
폴란드 점령이 이런 것이었던 가...
우리는 잔악행위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만
진실은 알 수는 없었다.

이 나라는 침묵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이 대학살의 시작이고
거기에 우리의 손과 용기를 보태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독일의 폰카 게네 겐 중위-

 

독일 점령하에 있는 폴란드의 시민

 

히틀러는 동부전선 공격 계획을 연기하였습니다.

이유는 아프리카에서 고전을 하고 있는 이탈리아를 지원하기 위함이었죠.

이탈리아의 수상 '베니토 무쏠리니'는 아돌프에게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히틀러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베니토 무쏠리니
영국에 패배하는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군대는 아프리카 사막에서 고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막의 이탈리아 군인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히틀러는 리비아에 유명한 장군을 파견합니다.

그는 바로 에르빈 롬멜 장군이었죠. 기갑 술의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에르빈 롬멜 독일 장군

 

롬멜 장군은 1940년 5월과 6월 사이에 엄청난 승리를 이끈 전쟁영웅입니다.

골수 나치 당원으로 그는 즉각 아프리카 군에 명령을 내려 영국 진영으로 진격합니다.

 

 

영국군의 그의 등자만으로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의 사진을 대대적으로 전파해 위험인물이라고 경고했죠.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위를 날고 있는 독일 전투기

 

아프리카에 롬멜을 파견해놓고 히틀러는 무솔리니가 침공하려고 했던

그리스를 침공합니다. 발칸반도를 공격함으로써 소련을 침공하기 위한

남쪽 지역을 확보했지만 히틀러는 귀중한 시간을 잃었습니다.

 

작전설명중인 아돌프 히틀러

 

 

모스크바에서 매년 펼쳐지는 군사 퍼레이드가 준비됩니다.

이번 퍼레이드는 평소와는 다릅니다. 스탈린은 뭔가 독일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곧 공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스파이들의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을 위반할 것이라 생각치 못했습니다.

 

 

이 퍼레이드에 독일군도 참여를 했습니다.

세미욘 티모센코 장군이었습니다. 소련군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하고 있지만

서로가 적이라는 사실은 이 순간에도 자명한 것이었죠.

 

 

히틀러는 동부전선에 대한 만반의 준비는 다 되었지만

전선을 둘 이상으로 나누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가졌습니다.

 

히틀러는 영국과 평화조약을 맺고 싶었죠. 

 

영국의 라디오에서 특별한 소식이 전파됩니다.

스코틀랜드 지역에 독일의 전투기가 추락을 했고

전투기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피신을 했다.

 

 

그 전투기 조종사는 '루돌프 헤스'였습니다.

 

 

루돌프 헤스는 영국이 온 이유가 평화를 맺기 위해서 왔다고 했었죠.

원래 루돌프 헤스는 독일의 열성 나치당원이었습니다.

 

 

헤스는 자신이 나치당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영국과의 문제를 푸는데 자기밖에 없다 라고 했었죠.

 

하지만 윈스턴 처칠은 헤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후 그는

평생을 영국 감옥에서 지내게 됩니다.

 

1941년 6월 21일 밤 독일로 가는 소련의 마지막 열차가 지납니다. 

그날 밤부터 22일 대대적인 독일의 공병대의 소련에 대한 공격이 시작됩니다.

별도의 선전포고도 없었습니다.

 

 

독일은 프랑스를 점령하고 프랑스 남부에 친독일 정권인 비시 정부를 세웠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탈리아 군을 지원하기 위해 동부전선 공격 계획을 늦추기도 했죠.

 

발칸반도의 여러 유럽의 나라들도 독일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서유럽의 전역이 독일의 수중으로 들어갔고

독일의 생존권의 확장이라는 이유로 이제 불가침 조약을 맺은

소련을 그 어떤 선전포고도 하지 않은 체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다음 편은 독소전쟁의 양상과 독일의 범죄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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